케이키 훌라
훌라는 수세기에 걸쳐 하와이에 전해 내려온 하와이의 춤이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은
훌라를 다음, 또 다음 세대로 이어갈 차세대 하와이 훌라 주자들은 오늘도 미소를 띄우며 훌라를 춘다.

케이키 훌라

글 Lynn Cook
사진 Dana Edmunds

“저는 네 살 때 마푸 고모네 집에서 케이키 훌라 컨테스트에 갔었어요.” 레베카 릴리노에케카파하우마우마키아 스털링(Rebecca Lilinoekekapahaumaunakea Sterling)은 말한다. 훌라 댄서들 사이에서는 릴리노에라고 부르는 소녀이다. “제가 처음 본 것은 성숙한 여자아이들 무리였어요. 아마도 5-6세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은 모두 한 줄로 서서, 함께 움직이며 훌라춤을 추고 있었어요. 정말 놀라웠죠. 저는 매 주 수업에 갔지만 처음 두 세달 동안에는 그저 고모의 무릎에 앉아서 구경만 했을 뿐이었어요. 내가 춤을 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저는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그 훌라 학교는 할라우 모할라 일리마(Hälau Mohala ‘Ilima)이며, 릴리노에의 선생님은 쿠무 훌라 마푸아나 드 실바(kumu hula Mapuana de Silva)이다. 하와이 말로 쿠무 훌라는 훌라 스승을 뜻한다. 릴리노에의 여동생인 푸아(Pua) 역시 곧 학교에 입학하였고,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무용을 시작한 이 자매는 청소년 반을 거쳐,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무용을 하였다. 2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이 자매는 춤을 추고 있다. 아나케(‘anakë, 역주-조력자라는 뜻)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은 릴리노에는 쿠무 마푸아나의 초대를 받아 4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 후 릴리노에는 5세에서 8세 사이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린 아이들은 상당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활기를 되찾게 해 주는 에너지이죠!” 릴리노에는 말한다. “대학 수업이나 직장 생활로 인해 얼마나 피곤하든지 간에, 그들은 마법과도 같은 에너지를 발휘합니다.”

하와이에서 스털링 자매와 같은 수천 명의 어린 학생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훌라 학교에 입학하여 우아함과 능력을 겸비한 댄서로 성장한다. 케이키(Keiki, 역주-어린이라는 뜻의 하와이어) 훌라는 사물에 대한 흥미의 부흥의 일환으로 1970년대에 유명해 졌으며, 하와이 사람들은 이를 하와이 르네상스라 부른다. 1970년대 중반에, 가장 규모가 있고 가장 오랜 기간 진행되는 케이키 훌라 이벤트인 퀸 릴리우오칼라니 훌라 대회(Queen Lili‘uokalani Hula Competition)가 호놀룰루 차이나 타운에 위치한 ‘A’ala Park에서 열리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블레이스델 센터 아레나(Blaisdell Center Arena)에서 열리고 있는 이 대회는 매년 7월, 3일 동안 매일 2천 명의 관중을 모으고 있다. 마푸아나는 1980년부터 거의 매 해 행사의 케이키 부문에 참가한다. 첫 해에는 소년들이 참가해서, 8절로 된 노래에 맞추어 훌라를 추었다. “매일 제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카일루아(Kailua)에서 호놀룰루까지 가는 동안 노래 연습을 하도록 시켰어요. 팔리 고속도로(Pali Highway)를 타고 가는 길에, 아이들은 노래를 외우게 될 때까지 계속 노래했어요.” 집에 가는 길에 아이들은 노래를 다 외웠다. “똑똑한 아이들이군요.” 마푸아나는 미소 지었다. 소년들은 1등을 차지했다. 

오아후의 파인애플 농장 한가운데 위치한, 훌라 스튜디오를 겸하는 집에서 성장한 올라나 아이(Olana Ai)는 어머니인 블로썸 칼리포니 클라크 카이포(Blossom Kailiponi Clark Kaipo)가 호놀룰루 그린 랜턴(Green Lantern)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우리집은 농장에서 5.6킬로미터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어요.” 그녀는 말한다. “어머니는 파인애플 트럭 뒤에서 훌라춤을 추곤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매우 중요했다고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네 살 때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와 어린 형제자매들은 어머니의 셀로판 스커트를 발견하고, 핀으로 고정해 입은 다음 훌라춤을 추는 흉내를 내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죠, ‘좋아, 넌 춤을 추고 싶니? 훌라 교실에 가면 좋겠구나!’ 그 날은 토요일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땐 몰랐어요. 훌라춤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될 줄은요!” 올라나는 말한다. 

올라나와 그녀의 남편인 하워드 아이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각기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올라나는 각 학교에 어떤 식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훌라가 그 대답이었다. “나는 파티오에서 수업을 했어요.” 그녀는 말한다. 결국 올라나는 발코니에서 방과 후 무용 수업에서 세계적인 댄서를 배출하게 된다. “용기를 얻어서, 나는 퀸 릴리우오칼라니 훌라 대회의 조직위인 칼리히 팔라마(Kalihi-Palama) 문화 예술 협회의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웬델 실바(Wendell Silva)에게 전화를 했어요. 미스 케이키 훌라(Miss Keiki Hula)를 뽑는 대회에 내 딸인 나탈리(Natalie)를 데려갈 수 있냐고 물었죠. ‘그룹 모두를 데려오세요.’라고 그가 말했어요.” 오늘날, 할라우 훌라 올라나(Hälau Hula Olana)는 아주 어린 댄서들에게 행사나 대회에서 공연을 하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학생들은 방을 가로질러 무대로 우아하게 걸어 나간다. 

어린 쿠무 훌라 일리아히 하우나니 파레데스(‘Iliahi and Haunani Paredes)들도 두 개의 섬에서 유사한 길을 따른다. 일리아히는 오아후에 있는 하워드 아이와 함께 춤을 시작한다. 마우이에서, 하우나니 훌라의 길은 잘 알려진 쿠무 훌라 울루웨히 구에레로(Uluwehi Guerrero)와 킬리이 레이첼(Keali‘i Reichel)로 그녀를 인도하였다. 그 당시 일리아히는 로스쿨에 재학중이었고, 하우나니의 할라우는 오아후로 여행하면서 그와 함께 공연하였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진 거죠.” 그가 말한다. “마치 운명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마우이에 정착하였고, 그 곳에서 할라우 케쿠아오칼라오알라일리아히(Hälau Kekuaokala‘au‘ala‘iliahi)를 설립하였다. 그들은 케이코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매 년 한 무리의 댄서를 퀸 릴리우오칼라니 훌라 대회에 출전시킨다. 

할라우 케쿠아오칼라오알라일리아히에 있어, 2012년 퀸 릴리우오칼라니 훌라 대회로 가는 길은 1년 전에 미리 정해져 있었다. 그 당시 쿠무는 할라우를 대표할 두 명의 댄서를 선발하였다. “우리는 한 댄서에서 어떤 특별한 것을 보았습니다.” 일리아히는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끔 하였습니다. 우리의 직감이 맞다는 것을 알게되는 건 무척 큰 기쁨이죠.” 그리고 실제로 2012년에 그들의 직감은 맞아 들었다. 수 천 명의 관중 앞에서, 하우나니와 일리아히의 학생 중 두 명이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렉시 매이(Lexi Mae)는 미스 케이키 훌라로 선정되었고, 알레마 에바나(Alema Ebana)는 마스터 케이코 훌라에 선정되었다. 같은 할라우에서 미스 케이코 훌라와 마스터 케이코 훌라가 동시에 선정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보통 한 할라우에서는 소녀들만, 소년들만, 또는 그룹으로만 참여하기 때문이다. 우승의 영예를 차지한 후 새롭게 왕관을 쓴 렉시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 쿠무께서 나에게 춤을 출 것을 권유했을 때, 이는 또 다른 연습을 의미한다고, 아마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의 연습을 의미한다고 전 생각했어요.” 두 학생 모두 연습은 일주일에 6시간 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추는 춤을 이해하기 위해서 동작뿐 아니라 하와이 언어를 배워야만 했다. 그들은 또한 일반적으로 한 무리의 댄서에 둘러싸인 춤이 아니라, 편안한 솔로 댄스를 추어야 했다. 

하와이에서 훌라는 남녀노소가 다함께 즐긴다. 임산부들은 훌라 연습을 하다가 분만실로 가곤 했다. 그리고 가능한 빨리 훌라 수업으로 돌아온다. 쿠무 훌라 마일레 비머 루(Kumu hula Maile Beamer Loo)는 “아이를 안고 하는 훌라” 수업을 만들어, 태어난 지 수 주밖에 안 된 아기를 안고 엄마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했다. 엄마들은 아기가 자신의 어깨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웃으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다. 곧, 이 수업은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이 된다. 엄마와 아빠, 형제 또는 삼촌들이 토요일 아침에 아기와 함께 둘러 앉아 훌라춤을 춘다. 그리고 곧 아기가 4살이 되면, 할라우에 들어가 훌라 훈련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아주 어린 나이에 훌라를 시작한 아이들은 때로 일생동안 한 곳의 할라우에 머무러게 되는데, 이들은 같은 쿠무에게서 자신만의 케이키를 배우게 된다. 케이키를 가르치는 쿠무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꽤나 고생을 하며 배우게 되는 반면, 나이 어린 댄서들은 훨씬 빠른 속도로 노래를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댄서들은 대학 진학이나 결혼 또는 직장 생활을 위해 잠시 휴식을 갖지만, 훌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는다. 댄서들이 훌라 학교를 발견하게 되면 다시 훌라춤의 세계로 돌아온다. 때로 친구, 친척과 함께. “일단 뇌에 훌라가 각인되면, 어디를 가든 간에, 기타의 첫 음을 듣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이게 되고 춤을 추게 되지요.” 루는 말한다. 
부모들은 전적으로 쿠무에 의지하여, 자녀들이 춤 이상의 것을 배우게 될 거라 기대한다. 할라우는 훌라의 문화, 그리고 노래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배우는 곳이다. 훌라는 때로 아이들에게 하와이 언어를 소개하기도 한다. 나이 든 댄서들이 질투할지도 모르는 편의 시설에서 하와이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학생과 부모들은 티 리프 레이(ti leaf lei)를 짜는 법을 배우고 훌라 공연에서 입게 되는 티 리프 스커트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2012년에 릴리노에는 메리 모나키 페스티벌(Merrie Monarch Festival)인 “훌라 올림픽(Olympics of hula)에 마푸아나의 할라우를 대표하여 출전하였다. 4천 명의 팬들이 에디스 카나카올레 스타디움(Edith Kanaka‘ole Stadium)을 가득 메웠고, 수십 만 명 이상의 팬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릴리노에가 훌라 댄서로서 더없는 영광이라 여겨지는 영예를 차지하였을 때, 일생에 걸친 훌라 연습의 시간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미스 알로하 훌라의 타이틀을 달고 1년에 걸쳐 전 세계를 여행한 후, 릴리노에는 다시 돌아와 오아후 카일루아에서 케이키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젖먹이 아기들에게 훌라를 가르치는 일은 세련된 형태의 베이비 시팅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릴리노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도 훌라가 주는 더 큰 교훈과 가치를 가르칠 수 있다.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는 훌라가 심어주는 자부심입니다. 학생들은 자신보다 더 큰 어떤 것의 일부가 되는 기분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춤을 추는 법을 배우며, 스스로 어떤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훌라가 그러한 열정에 불을 붙이는 순간,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겁니다!” 햇빛이 스미는 할라우에서, 릴리노에는 그녀가 고작 네 살이었을 때 그녀의 쿠무가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을 학생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항상 미소지어라, 운동 선수처럼 훈련하고, 준비가 되었을 때 춤을 추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