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만난 김치
아시아권을 제외하고 한국 밖에서 김치가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곳은 아마 하와이일 것이다. 겉모습만 보자면 한국인과는 좀처럼 닮은 것이 없어 보이는 하와이 사람들이지만 입맛은 한국인과 비슷한지, 하와이의 웬만한 대형 슈퍼에서는 김치를 흔히 볼 수 있다. 지역 축제나 레스토랑에도 김치를 이용한 메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와이에 김치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하와이에서 만난 김치

글 데이비드 추(David K. Choo)
사진 Dana Edmunds 

나는 4세대 한국계 미국인이다. 다시 말해 무늬만 한국사람이란 말이다. 부끄럽게도 한국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한국식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메뉴를 읽을 줄 아는 알량한 재주가 한국 문화와 관련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라는 동안 한국이 나의 뿌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김치뿐이었다. 유아용 보조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던 시절에도, 나는 김치 한 움큼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듯 활짝 웃었다고 한다.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에는 오이소박이를 고명 삼아 잔뜩 얹은 사이민(Saimin, 하와이식 국수장국-역주)에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 있는 주홍빛 김치 국물을 부어서 먹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김치샌드위치 만들기 도사가 되어 있었다. 흰 빵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배추김치를 한 잎 얹은 다음 그 위에 흰 빵 한 조각을 얹으면 완성이었다. 중학생 때에는 김칫독으로 달려가 김치를 꺼내 먹을 정도로 진정한 김치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내가 김치 마니아라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를 진정한 한국인이라 자부해왔다. 하지만 이건 터무니없는 오산이었다. 기네스(Guinness)를 즐겨 마신다고 아일랜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듯, 또 늘 파스타를 먹는다고 이탈리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듯,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한국인의 자질이 저절로 함양되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말이다. 씁쓸한 진실과 대면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내가 즐겨 먹던 하와이식 김치의 맛이 한국 토종 김치의 맛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먹고 자란 김치는 한국식 김치보다 훨씬 덜 매운 김치였다. 찹쌀풀에 고춧가루와 각종 양념을 버무려 담그는 한국식 김치와 달리, 하와이식 김치는 고춧가루를 넣은 소금물로만 양념을 했다. 아삭아삭하고 신선한 김치를 선호하는 하와이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 조리법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하와이 사람들은 발효가 너무 진행되어 푹 익어버리기 전에 김치를 꺼내 먹었다. 하와이 김치의 맛이 깔끔하고 담백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진짜’ 한국 김치는… 글쎄, 완전히 다른 차원의 맛이라고나 할까. 

하와이의 한국 슈퍼마켓인 퀸즈 슈퍼마켓(Queen’s Supermarket)의 주차장에서 맨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그 특유의 냄새이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유황 냄새가 섞인 퀴퀴한 향이 콧속 가득 스며들어온다. 정체는 마늘, 생강, 양파, 배추, 무가 한데 어우러져 발효된 냄새이다. 바로 김치의 향이다. 퀸즈 마켓에서 파는 김치는 한국 김치와 매우 비슷하다. 이곳에서는 파(부추?)로 속을 채운 오이소박이나, 해산물을 넣어 버무린 포기 배추김치 같은 한국 전통 김치를 구매할 수 있다. 이곳에서 파는 배추김치에는 김치 제조업체에서는 흔히들 잘라내는 뿌리나 겉 잎사귀 부분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이곳에서 ‘김치 여사’라 불리는 장인을 만났다. 사실 그녀의 김치는 이미 여러 차례 맛보았다. 많은 사람이 오아후 최고의 김치라 치켜세우는 그녀의 김치는 각종 파티나, 피크닉 혹은 가족 모임의 단골 메뉴이다. 김치 여사의 이름은 성동임 씨다. 그녀는 영어를 거의 못했고, 나는 한국어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내내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녀의 김치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김치는 배추김치라고 한다. 그 다음은 오이소박이, 무김치가 인기가 많다고 성 여사는 말했다. 그녀는 굴, 오징어, 꼴뚜기, 어린 문어, 게, 대구 내장 등을 이용해서 김치를 담는다. 또 마늘대나 참깨잎, 달래 같은 흔치 않은 채소로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김치마다 들어가는 양념도 각기 달라, 성 여사는 매일 50여 종의 김치 양념을 손수 버무린다. 내가 찾아갔을 때에도 성 여사는 김치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성 여사의 좁은 작업장에서는 수십 포기의 배추김치를 담그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녀는 마늘과 생강을 다져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담고 있었다. 옆에 산처럼 쌓여 있는 고춧가루와 함께 버무릴 양념이란다. 마늘과 생강이 많아도 너무 많아 보였다. 지금 만들고 있는 양념에 마늘과 생강, 그리고 고춧가루 외에 무엇을 더 넣는지를 물었더니 성 여사는 그저 웃기만 했다. 며느리도 안 가르쳐 준다는 그 비법인가보다. 양념을 완성한 성 여사는 반으로 쪼갠 배추의 머리 부분부터 양념에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빨갛게 약이 오른 배추 한 포기를 삽으로 척 떠서는 김칫독으로 옮겼다.

성 여사가 다음 배추를 버무리는 동안 나는 각양각색의 김치가 나름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서 가장 맵고도 빨간 뷔페 음식상을 마주한 나는 일단 배추김치와 채심(菜心)김치, 파김치를 조금씩 집어 들었다. 나를 지켜보던 성 여사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골랐다는 의미였기를 바라며 그곳을 나섰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이 세 종류의 김치를 어제 남긴 스키야키 요리와 밥에 곁들여 먹어보았다. 세 종류의 김치 모두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아삭아삭했다. 하지만 막 버무린 김치여서 그런지 쓴 맛이 배어났다. 며칠간 발효 과정을 거치면 쓴맛은 날아갈 것도 같았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그리고 양파의 위력은 대단했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물론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하와이 김치의 독특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와이의 이민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 역사는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하와이를 찾는 한국인의 발길은 2년 반 만에 뚝 끊기고 만다.  1905년 일제가 한국을 점령한 탓이다. 이 2년 반 동안 하와이에 터전을 마련한 한국인은 7천 명 남짓이었다. 이들 중 2천여 명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1천여 명은 다시 한국땅으로 돌아갔다.

하와이에 갓 이민 온 한국사람의 신분은 앞서 하와이에 뿌리를 내린 일본인이나 중국인 이민자들과는 달랐다. 이 한국인 이민 1세대들은 노동 계약을 맺고 하와이에 이민 온 것이 아니었다. 참고로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이민 초기에 맺었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 계약은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된 1898년부터 미국 법에 따라 무효가 되었다. 한마디로 당시 여건상 한국 이민자들은 먼저 이민 온 타 민족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점도 있었거니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으로 돌아갈 길마저 요원했던 4천여 명의 한국인 이민자들은 급속도로 하와이 사회에 동화되어갔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플랜테이션 농장 밖으로 입지를 넓혀나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늘어났고, 많은 한국인이 하와이 현지인과 결혼했다. 한국 이민자들은 그 수는 적었을지 몰라도, 경이로운 적응력의 소유자들이었다. 한국인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르게 하와이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김치가 하와이 땅에서 최초로 대량 생산된 것은 1919년의 일이다. 빅 아일랜드에서 열린 한 교회의 자선모금행사에서였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조 킴(Joe Kim) 씨는 오아후의 칼리히 밸리(Kalihi Valley)에 다이아몬드 김치라는 업체를 설립했다. 킴 씨는 1940년에 다이아몬드 김치라는 상호를 자신의 이름을 딴 상호로 변경했다. 이어 1949년에 한나 킴 리우(Hanna Kim Liu) 씨가 코할라 김치(Kohala Kim Chee)라는 브랜드를 빅 아일랜드에서 출시했다. 거의 동시에 하와이 섬 정반대편에서 전직 빅 아일랜드의 시장인 해리 킴(Harry Kim) 씨의 어머니 야물 킴(Ya Mul Kim) 여사가 키아우 김치(Kea‘au Kim Chee)를 만들기 시작했다. 헬렌 함(Helen Halm) 씨도 김치 생산자 대열에 합류했다. 함 씨는 카이무키(Kaimukï)에 있는 남편 사무실 뒤편의 주방에서 처음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이 네 개의 김치 브랜드가 바로 하와이 김치 산업을 40년간 지배해온 대표 김치 브랜드이다. 그리고 이 회사들의 김치는 하나같이 한국 김치와는 전혀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하와이식 물김치는 맵거나 맛이 깊지는 않지만 더 짭짤하고 순해서 다양한 요리에 잘 어울린다. 사실 한국 김치보다는 일본식 장아찌에 가까운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김치가 하와이로 외유를 한 지 한 세기 만에 한국의 토속적인 음식에서 일본인 플랜테이션 농부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아마 손에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이용해야 했던 이민자들의 처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은 말이죠. 또 그들의 이웃이나 고객들이 그런 심심한 맛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에 적응한 면도 없지 않아 있겠지요”라고 마이크 아이리시(Mike Irish) 씨가 말했다. 아이리시 씨는 함 씨가 설립한 김치 사업체의 CEO이다. “한국 사업가들의 근성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이리시 씨가 자신의 태생을 은근히 내비쳤다. 

아이리시 씨는 하와이에서 가장 많은 김치를 담그는 남자이다. 그의 몸의 절반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그의 회사는 하루에만 3천 킬로그램에 달하는 채소를 절인다. 하와이 김치 시장의 60~6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회사의 수장인 이 남자에게는 ‘하와이 김치 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나는 하와이식 김치 제조 공정과 하와이식 김치의 독특한 역사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알아보기 위해 아이리시 씨의 회사를 찾았다. 김치 공장의 한구석에서 세 명의 남자가 머셰티(machete, 날이 넓고 무거운 칼-역주) 같은 식칼로 배추의 뿌리 부분을 잘라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능숙한 솜씨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배추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스테인리스스틸 용기에 쏟아 부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대여섯 명의 여자가 각기 다른 정도로 발효된 배추가 담긴 용기를 하나하나 검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작업한 배추김치는 다음 날 양념 국물과 함께 병에 담아 냉장 보관했다가 다음 날 하와이 전역의 슈퍼마켓으로 배달된다.

“하와이식 김치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아이리시 씨가 말했다. “이 두 나라에 얽힌 질곡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건 사실 일어나기 힘든 일이죠. 하지만 음식만큼 서로의 문화를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고, 그 나라의 음악을 모른다고 해도 무작정 앉아 그 나라의 음식을 먹고 나면 그 나라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저 하와이에 이민 온 한국사람들이 일본식 장아찌인 츠케모노(tsukemono)를 맛보았고, 이 맛을 김치에 응용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와이식 김치의 역사와 조리법을 떼놓고 아이리시 씨가 운영하는 사업체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함즈 엔터프라이즈(Halm’s Enterprise)는 현재 7개의 김치 브랜드를 소유한 모기업으로 성장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브랜드는 단연 함즈 김치이다. 아울러 코할라(Kohala) 김치, 다이네스티, 케왈로(Kewalo), 스위트 찰리(Sweet Charlie)와 같은 함즈 엔터프라이즈의 다른 김치 브랜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전통 김치와 가장 비슷한 김치를 생산하는 브랜드는 하이 맥스(Hi Max)이다. 
이 일곱 개의 브랜드는 제조 방식과 맛이 제각각이다. 코할라 김치는 다른 김치보다 훨씬 더 짜게 절여두었다가 저장하기 직전에 두 번 물에 헹궈서 담근다. 다이네스티 김치에는 잘게 다진 사과를 넣는다. 그리고 스위트 찰리의 김치는 정말 말 그래도 달다. 신제품인 A-1 김치는 부서지기 쉬운 오이를 잘게 썰어서 만들어야 하므로 장인의 손길로 담그는 김치라 할 수 있다.

아이리시 씨도 사업측 측면을 고려하면 인기 있는 몇 개 브랜드에 집중하고 나머지 김치는 박물관으로 보내는 편이 낫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리시 씨의 말에 따르면 각 브랜드마다 그 브랜드의 김치만 고집하는 골수 팬이 있어 일정한 수요가 상존한다. 이어 그는 함 엔터프라이즈에 고유 김치 브랜드를 양도한 전 사주 가족이나 이런 단골 고객에 대한 모종의 책임감이 이 모든 브랜드를 고수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김치가 진짜 김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김치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 그런 의미에서는 진짜 김치가 아닌 것이 맞죠”라고 아이리시 씨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 김치는 하와이 김치의 참 맛을 고스란히 이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진짜가 맞는 거죠.” 

월요일 오후 나는 호놀룰루에 있는 앨런 웡(Alan Wong) 씨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호놀룰루에는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두 개 있다. 그곳에서 나는 ‘아시아풍 사워크라우트(독일식 김치-역주)’를 곁들인 르우벤(Reuben)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스타 셰프가 손수 만든 앨런 웡 표 김치샌드위치는 내가 만들어 먹던 샌드위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호밀빵에 얇게 저민 파스트라미, 스위스 치즈와 배추김치를 끼워 넣고 톡 쏘는 마늘과 마요네즈의 아이올리 소스로 마무리한 샌드위치였다. 웡은 이 샌드위치가 자신의 두 레스토랑의 간판 메뉴라고 자랑했다. 

 그���러고는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먹는 나를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그는 먹을 만하냐는 질문을 할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입안 가득 베어 문 샌드위치를 다 씹어 넘기기가 무섭게 다시 샌드위치에 정신없이 입을 갖다 대는 내 앞에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르우벤 샌드위치는 대조적인 맛과 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이 하나하나의 맛과 질감은 서로를 보완하고 있었다. 맛있기로 정평이 난 샌드위치라면 무릇 그러하듯이 말이다. 빵은 바삭바삭하고 파스트라미는 부드러웠는가 하면 아삭아삭하면서 살짝 신 배추와 살짝 매콤한 알리올리 소스의 환상적인 조화도 감칠맛 났다. 입안에 감도는 김치의 강렬한 매운맛이 묘한 여운을 남기는 샌드위치였다. 그렇다고 김치 맛만 두드러졌다는 말은 아니다. 웡이 지방이 매운맛을 완화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알리올리 소스가 김치의 매운맛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을 아주 사랑합니다”라고 웡 씨가 말했다. “저는 함(Halm)사의 김치를 먹고 자랐습니다. 오이김치를 가장 좋아했죠. 우리 집 냉장고에는 김치가 떨어진 적이 없어요. 다 제 어머니 덕분이죠.” 나는 웡 씨도 어린 시절 사이민에 김치 국물을 부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도 김치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단다. 마요네즈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넣어 먹은 것 같지만 말이다. 웡 씨는 김치를 비롯하여 자신이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을 주제로 요리를 연구해온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구 결과 중에 비교적 훌륭한 작품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즐겨 먹던 요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웡 씨의 레스토랑에는 르우벤 샌드위치 외에도 김치를 이용한 다양한 퓨전 요리 메뉴가 있다. 김치를 곁들인 태국식 커리 요리가 그 예이다. 시큼하고 아삭한 김치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이 커리는 김치 때문에 그 매운맛이 강화되어 먹고 나면 혀가 얼얼하다. 

내가 샌드위치를 먹어 치우는 동안 웡 씨는 나에게 김치를 비롯한 한국 요리가 전 세계 요식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를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웡 씨는 한국 음식은 향이 강렬해서 퓨전 요리로 개발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음식이라고 말하며 LA의 갈비 타코를 예로 들었다. LA에서는 몇 해 전에 갈비 타코 열풍이 일었었다. “김치를 그리스식 요거트나 다른 지중해 요리, 아니면 중동 요리에 접목하여 퓨전 요리를 개발하면 어떨까요?” 웡 씨가 조금은 뜬금없이 들리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 요리들은 의외로 서로 잘 어울립니다. 이 요리들에 사용되는 양념이나 소스가 서로 잘 어울리거든요. 요리를 먹는 방식도 서로 잘 맞고요. 만약 뉴욕에서 활동하는 셰프가 이런 퓨전 요리 개발에 성공한다면 아마 수많은 사람이 그 요리를 맛보고 싶어 할 겁니다. 새로운 한식 퓨전 요리의 탄생인 거죠.”
나는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실제로 성공을 거두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냐고 웡 씨에게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쭉 김치 같은 한국 음식으로 요리를 개발하려 했다고 하니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전 다 좋을 것 같아요.” 웡 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요식업계에도 좋은 일이고 하와이에도 좋은 일이니까요. 처음의 신기함이 가시고 나면 사람들은 하와이에서는 늘 김치로 무언가를 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거예요. 우린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김치 같은 한국 음식에 새로운 요리법을 접목하고, 다른 재료를 섞고,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며칠간 이어진 웡 씨와의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치에 대한 조사를 할 거란 얘기를 꺼냈을 때, 엄마는 아직 새댁이던 시절 할머니에게 김치 요리법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내 전화를 받은 엄마는 그날 밤 한달음에 달려왔고 우리는 우리 가문의 김치 제조 비법에 따라 김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엄마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요리솜씨 하나는 알아주는 사람이지만 김치를 담가본 적은 없다. 어쨌든 엄마는 내가 조리법을 읽고 있는 동안 능숙한 솜씨로 재료를 다듬었다. 조리법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고상한 필체로 깔끔하게 적혀 있는 조리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배추 2포기
고추 3개(씨를 제거할 것)
큰 마늘 1쪽 
작은 생강 1톨
파 2뿌리
작은 양파 1개
물 3.5리터
하와이 소금 한 컵 반

“달랑 마늘 한 쪽이랑 생강 작은 것 한 톨만으로 충분할까? 고추에서 씨를 빼야 한다고? 마늘이 아니라 마늘대를 넣으라는 얘기가 아닐까?” 나는 엄마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결국 우리는 조리법에 적힌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합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치를 담그는 데 성공했다. 냉장고에 보관한 지 3일째 되는 날 나는 들뜬 마음으로 김치를 맛보았다. 약간 짜긴 했지만 아삭아삭했다. 배추에서 아직 흙내가 가시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 강한 생강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조금 더 맛을 보자 슬금슬금 혀를 아리게 하던 고춧가루의 매운맛이 점점 더 강렬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지독하게 매운 것은 아니었다. 마늘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냉장고 문을 연 채 서서 조금만 맛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럴 게 아니라 제대로 음미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그릇에 따뜻한 밥을 담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을 만 밥에 김치 몇 조각을 떨어뜨렸다. 내가 담근 김치는 여전히 짭조름했다. 김치를 넣었는데도 맑은 국물에서 붉은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한술 뜨니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내가 담근 김치에서 진짜 김치 맛은 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이게 바로 ‘김치의 참맛’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