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온 네네
STORY BY 섀넌 위아네키 SHANNON WIANECKI | PHOTOS BY엘리스 버틀러 ELYSE BUTLER

1962년 6월, 마우이 할레아칼라 국립 공원 (Haleakalä National Park) 중심부로 이어지 는, 화산재로 뒤덮인 꼬불꼬불한 길에서는 이상 한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12명의 보이스 카우트 단원이 야생 생물학자 몇 명과 짐 나르 는 노새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슬라이딩 샌드 트 레일(Sliding Sands Trail)을 따라 걷다가 화산 분화구의 심장부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단원들 은 각자 두꺼운 종이상자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있는데, 각각의 종이상자에는 거위가 한 마리 씩 들어 있었다.

상자 속 거위들은 영국에서부터 아주 먼 길을 왔다. 자신들의 날갯짓이 아니라 비행기의 힘을 빌려서 왔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거위들 은 브란타 산드비센시스(Branta sandvicensis), 또는 하와이어로는 네네(nënë)라 불리는 토종 하와이안 거위들이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차가운 바람이 할레아 칼라의 1만 피트(3킬로미터) 정상에 몰아쳤다. 56부대의 어린 단원들은 처음에는 따뜻한 모 자와 코트로 꽁꽁 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 산분화구의 황량한 표면을 가로지르기 위해 16 킬로미터를 걷고 나니 해가 위에서 강하게 내리 쬐고 있었다. 단원들은 공원의 정상에서 가장 멀 리 떨어진 오두막집 팔리쿠(Palikü)에 펼쳐진 신 록의 초원을 향해 나아갔다. 할레아칼라에서 드물 게 이따금이나마 빗방울을 맞을 수 있는 곳이다.

“저는 세 마리의 거위를 운반하고 있었어요.” 당시 17살 꼬마였던 칼 엘드리지(Carl Eldridge) 씨가 회상한다. 지금은 풋볼선수가 된 그는 어 린 단원들이 거위를 운반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 해 화산분화구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었다. “우 리는 무척 힘들었지만 서로 도와주었어요. 재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하이킹도 할 수 있었고요. 우리가 운반하던 새들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습 니다.”

팔리쿠에 이르러 소년들이 운반하고 있던 이 깃털로 뒤덮인 생명체를 풀어주자, 네네들은 상 자에서 뒤뚱뒤뚱 기어나와 마우이 땅을 밟았다. 70년이 지난 후 처음 밟는 고향땅이었다.


네네는 하와이의 주조(역주: 주를 상징하는 새)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생명체 중 하 나로 군도의 잃어버린 지상낙원 시대를 보여주 는 증거이다. 사람이 발을 들이기 전까지 하와 이 군도는 꼽등이, 산을 타는 게, 긴다리부엉이, 희귀한 거위군 등 보기 힘든 동식물이 넘쳐났 다.

이들 중 네네만이 현재 외롭게 살아남았다. 하와이 거위의 본래 고향은 서구이다. 약 5000년 전, 빅아일랜드(Big Island)가 막 수면 위로 떠오를 무렵, 한 무리의 캐나다 거위가 궤 도를 벗어나 하와이 섬에 내려앉았다. 이 거위들 의 자손은 네네(nënë), 네네누이(nënë nui), 몸집 이 거대한 하와이 거위, 이렇게 서로 다른 세 가 지의 종으로 진화했다. 그중 네네가 조상인 캐 나다 거위와 가장 흡사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육지 생활에 적합하게 진화함에 따라 몇 가지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보인다. 시간이 지 나면서 발에 있던 검은 물갈퀴가 도태하고 용 암 평지에 더 적합한 두꺼운 발바닥이 발달했다. 암회색의 날개는 점점 짧아졌고 겨울이 되면 남 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땅에 머물렀다.

사람이 하와이 군도에 처음 정착하면서부터 거위의 생활환경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폴리네 시아인이 들여온 들쥐와 개는 거위를 잡아먹었 고, 알을 훔치고, 둥지를 망가뜨렸다. 포유류 포 식자가 없는 상태에서 진화한 네네는 그만큼 방 어 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쉽게 표적이 되었다. 갓 부화한 네네의 새끼는 나는 법을 터득할 때 까지 3달의 시간이 걸리고, 이 기간 동안 어미 새는 털갈이를 한다. 이는 네네의 온 가족을 쉽 사리 위기에 노출시켰다.

게다가 사람들은 거위를 사냥해 고기와 달걀 과 깃털을 얻었다. 날지 못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네네누이와 몸집이 거대한 하와이 거위는 폴리 네시아인의 정착과 함께 곧 멸종되었다. 반면 몸 집이 비교적 작고 민첩한 네네만은 이 같은 운명 을 피할 수 있었는데, 여전히 멸종위기에 몰리 게 되었다.

서양인이 군도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많은 습지가 설탕과 파인애플을 재배하기 위해 파괴되었다. 1883년에는 네네의 천적인 몽구스 가 군도에 모습을 나타냈다. 네네의 최대 암흑기 는 1946년에 찾아왔는데, 이때까지 빅아일랜드 를 제외한 하와이의 모든 섬에서 네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같은 해에는, 힐로(Hilo) 에 들이닥친 쓰나미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수의 절반인 31마리의 네네가 휩쓸려 사라졌다. 1940년대 말에 이르렀을 때, 빅아일랜드에는 35마리도 채 안 되는 야생 네네와 이보다 조금 더 많은 수의 사육 네네만이 남아 있었다. 네네 역 시 사촌들과 마찬가지로 멸종의 문턱까지 간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네네는 멸종위기를 면 했다. 이는 몇몇 사람의 열정 덕분이었다. 하 와이 거위들이 처한 곤경은 지구 반대편에 살 고 있던 영국의 동식물연구가 피터 스콧(Peter Scott) 씨의 귀에 들어갔다. 스콧 씨는 글로스 터셔(Gloucestershire: 잉글랜드 남서부 주) 주 의 슬림브리지(Slimbridge) 습지 보호소에서 희 귀한 물새에 대해 공부하고 번식시키는 일에 열 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동료인 찰스 슈워츠 (Charles Schwartz) 씨가 하와이에서 엽조를 관 리하는 일을 맡았을 때, 네네를 보살필 것을 강 력하게 권고했다. 그리고 슈워츠 씨는 그의 권고 를 들었다. 1949년, 빅아일랜드의 포하쿨로아 에 야생 네네와 사육 네네를 모아 번식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도운 것이다.

하와이와 영국의 합작은 성공적이었다. 스콧 씨는 새로운 네네 사육사를 교육하기 위해 전 문가들을 하와이로 파견했고, 포하쿨로아는 보 답으로 네네 한 쌍을 스콧 씨에게 보냈다. 두 마리의 거위는 슬림브리지에 도착과 동시에 알 을 나았다. 숫거위가 곧 뒤따랐고, 1951년이 되 자 세 마리의 거위가 알을 품고 있었다. 이 거위 들은 하와이 왕조의 이름을 본떠 각각 카메하 메하(Kamehameha), 엠마(Emma), 카이울라니 (Ka‘iulani)라 불렸다.

10년쯤 지나 포하쿨로아와 슬림브리지의 번 식 프로그램은 모두 자리를 잡았고, 생물학자들 은 이제 네네를 야생으로 돌려보내주려는 시도 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생물학자들은 네네를 풀 어줄 장소로 빅아일랜드의 4개 지역과 마우이 섬 의 1개 지역을 선정했다. 이때 마우이에서 선정 된 지역이 할레아칼라 국립 공원이었고, 1962년 6월의 아침, 영국에서 태어난 하와이 거위 35마 리가 칼 엘드리지를 비롯한 보이스카우트 단원 들의 손에 들려 이리로 운반되어온 것이다. 오래전 잃어버린 선조들의 영역을 되찾는 일 은 하와이 거위들에게 역사적인 인생역전의 순 간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이들을 멸종위기에 빠 뜨렸던 위험은 그곳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몽구스가 거위 두 마리를 죽 였어요.” 에디 안드레이드(Eddie Andrade) 씨가 회상한다. 그는 허튼소리를 할 줄 모르는 스포 츠 애호가로, 1968년 할레아칼라에 돌아온 거 위 무리를 보살피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다.

안드레이드는 30년 동안 수백 마리의 사육 거 위를 이 화산분화구에 풀어주는 과정을 감독했 고, 새끼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저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이 분화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제일 높은 언덕에 올라 네네들이 어디 있나 둘러보곤 했죠. 팔리쿠로부터 수 마일 떨어진 곳까지 놈들을 추적할 수 있었죠.” 그는 회상한다. 안드레이드 씨는 15년 전인 1997년에 일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네네 새끼들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목소리가 부드러워 진다. “어린 새끼들에게 키가 큰 풀을 헤치고 부 모새를 따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따라잡 지 못하면 사라지는 거였죠.”


현재 할레아칼라 국립 공원에는 250~300마 리의 네네가 서식하고 있다. 베테랑 야생 동식물 학자인 타마요세(Tamayose) 씨는 지난 20년간 네네들의 번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해왔 다. 평소 그녀는 공원 깊숙한 곳에서 거위의 둥 지를 찾아다니거나, 거위의 다리에 식별밴드를 붙여주며 시간을 보낸다. 한 번은 다리에 슬림 브리지 밴드를 달고 있는 거위를 발견하기도 했 다 – 이는 이 거위가 37년 이상을 살았다는 것 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네네는 20년에서 길어 야 30년을 산다.)

타마요세 씨의 말에 따르면, 2011년은 할레 아칼라 국립 공원의 네네들에게 기쁜 해였단다. 40마리의 새끼 거위가 완전히 성장해 날 수 있 게 된 것이다. 네네는 알을 품는 동안 무척 비밀 스럽게 행동한다. 둥지를 푸키아웨(pükiawe) 덤 불 아래에 밀어넣고 부드러운 털로 잘 덮어놓는 다. 하지만 일단 새끼들이 날갯짓을 시작하면, 원래 모여다니기 좋아하는 이 새들은 그동안의 비밀스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떼를 이루어 다니 기 시작한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네네에게 있 어 가족이 한데 모이고, 새로운 쌍이 탄생하는 시기로, 다채로운 음색의 거위 울음소리가 어울 려 내는 교향곡이 가파른 분화구 벽에 부딪혀 울려 퍼진다.

네네는 평생 동안 한 마리와 짝을 짓는다. 그 래서일까, 할레아칼라 국립 공원에서 네네를 보 살피고 있는 커플 역시 서로에게 헌신하는 모습 이 네네와 닮았다. 공원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를 돌보고 있는 케이틀린 베일리(Cathleen Bailey) 씨, 그녀가 처음 이 공원을 방문했을 때 는 겁에 질린 고등학생 봉사자에 불과했다. 하 지만 그녀는 공원의 장엄한 야생 생태계에 매료 되었고, 곧이어 늠름한 항공기 매니저였던 팀 베 일리(Tim Bailey) 씨에게도 매료되었다. 두 사람 은 네네의 다리에 식별밴드를 붙이며 만났다. 케 이틀린이 영리한 거위들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 넣는 동안 팀은 그물을 던졌다. 2002년 둘은 결 혼식을 올렸는데, 결혼반지를 끼는 손가락에 네 네 그림의 타투를 새겼다.

팀 씨는 그의 20년 커리어 인생 대부분을 하 늘에서 보냈다. 마우이에서 가장 자연 그대로 보 존되었다는 삼림지대를 공중에서 가로지른 뒤, 땅으로 내려와 포식자들을 통제하고, 망가진 울 타리를 고치고, 산불을 예방하는 것이 그가 하 는 일의 일부이다. 그가 이처럼 천연자원을 보 호하는 데에 열성적인 까닭은 그에게 하와이 토 착민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선조 들이 동식물을 또 하나의 가족처럼 여겼듯 본인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팀 씨는 쿠물리포(Kumulipo), 혹은 하와이 안 알마낙(Hawaiian Almanac)이라고 불리는 하와이 고대 서사시에 네네가 수호동물로 묘사 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와이 토종 새들은 아주 영리했어요. 우리를 물이 있는 곳, 식량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었죠. 네네는 본능적으로 이주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 고 이 땅에 머물렀어요. 저 또한 원한다면 어디 든 갈 수 있지만, 이곳에 남는 것을 택했습니다.”

네네가 마우이 땅으로 돌아온 지, 그리고 하 와이 주 전역으로 다시 퍼져나가게 된 지 이제 50년이 지났다. 네네가 할레아칼라에 성공적으 로 재정착한 덕분에, 이후 마우이의 다른 지역 을 비롯해 다른 섬에도 이들을 풀어주게 되었다. 가장 마지막 집계에 따르면, 마우이에 386마리, 하와이에 480마리, 몰로카이(Moloka‘i)에 112 마리, 카우아이(Kauai)에 1000마리, 모두 합해 서 2000마리의 하와이 거위가 살고 있는 것으 로 확인된다. 요즘은 이 카리스마 넘치는 새들 이 할레아칼라 국립 공원에서 워낙 흔히 목격되 는 까닭에, 공원 스태프들이 방문객들에게 이 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 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네의 이야기는 멸종위기 동물을 살려낸 가장 성공적인 스토리 중 하나일 거예요.” 케이틀린 씨가 말한다. “단 순히 동물 보호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스토리예요. 한때 멸종 위기에 처 했던 종이 다시금 번성하는 것. 우리 모두가 바 라는 이야기가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