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항해
STORY BY 소니 개너든 SONNY GANADEN | PHOTOS BY 몬테 코스타 Monte Costa

아침 햇살이 카네오헤 베이(Käne‘ohe Bay) 를 가득 채우고 카네후나모쿠(Känehünämoku) 를 환하게 비춘다. 카네후나모쿠는 보니 카하페아(Bonnie Kahapea) 선장의 잔디밭 앞 에 정박되어 있는 카누의 이름으로, 전통 폴리 네시아의 이중선체 카누를 복제한 모형이다. “바람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아침 항해를 하 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군요.” 우리가 선원들 – 레이오후 산토스-콜번(Lei‘ohu Santos-Colburn) 씨와 노엘라니 더피-스파이크(Noelani Duffey-Spikes) 씨, 그리고 칼라 토마스(Kala Thomas) 씨 – 과 함께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는 동안 보니 선장이 말한다. 카네후나모쿠는 비영리단체 마나 마올리(Mana Ma‘oli)의 소유 인데, 근처 공립학교 할라우 쿠 마나(Hälau Kü Mäna)의 9학년 학생들은 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교실에서 수업을 듣곤 한다. 또한 와아 카울루 아(wa‘a kaulua) –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이 탐 험이나 식민지 개척을 위해 거대한 태평양을 횡 단할 때 사용했던 카누 종류 – 로 항해하는 법 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훈련용 카누로 쓰이기도 한다.

와아 카울루아의 최초 모형인 호쿨레아 (Höküle‘a)가 만들어지면서, 카네후나모쿠의 선원들은 그 전까지 까맣게 잊혀졌던 것을 다 시 되살려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하와이에서 잊 혀졌던 고대 폴리네시안 항해법을 부활시킨 감 격스러운 이야기는 군도 전체에 이미 널리 알려 져 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얍(Yap)의 사타 왈(Satawal)이라는 섬에서 온 일류 항해사 마 우 피아이룩(Mau Piailug) 씨가 한 세대의 하와 이 주민들에게 선조들이 터득했던 천체항법술, 즉 별을 보고 방향을 읽어내는 항해법을 전수했 고, 1976년 호쿨레아가 이 항해법을 이용해 타 히티까지 운행에 성공함으로써 고대 폴리네시 아인들이 그들의 재주와 용기만으로 태평양을 평정할 수 있었음을 증명했다. 항해 성공 직후 인 1978년 호쿨레아가 오아후(O’ahu)에서 멀리 떨어진 심해에서 전복하는 비극이 일어났지만, 1990년대에는 사람들이 거의 모든 전통 소재를 동원하다시피 하여 하와이일로아(Hawai‘iloa) 를 다시 한 번 만들어냈다. 이 폴리네시안 고대 항해법의 부활 스토리는 오세아니아 사람들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끈기와 근성을 잘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고, 군도 내에서 ‘하 와이 르네상스’라고 알려진 문화 부흥 움직임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호쿨레아의 처녀 항해 이후로 지난 몇 년간 항해 기술이 많이 개선되고, 더 많은 카누들이 만들어졌으며, 항해 커뮤니티도 하와이 군도와 태평양 연안에서 크게 성장했다. 현재, 폴리네시 안 항해 소사이어티(Polynesian Voyaging Society) 의 호쿨레아와 히키아날리아(Hikianalia) 는 4년간의 세계일주 중이다. 그러는 동안 이 둘 보다 조금 덜 알려진 다른 카누들이 만들어졌 거나 혹은 만들어질 예정이고, 모든 항해 커뮤 니티가 와아 카울루아를 향한 이 커다란 노력 을 지지하기 위해 단결해왔다. 2017년, 호쿨레 아는 4년간의 세계일주를 마무리하고 타히티로 향해, 하와이의 각 섬에서 출항한 다른 카누들, 오하나 와와(‘ohana wa‘a: 카누 패밀리)와 만날 예정이다.

“온종일 항해를 하고 싶지만, 오전 수업이 시 작하기 전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별 로 없네요.” 보니 선장이 말하는 동안 선원 레 이오후 씨는 육지에서 9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암초길을 통과하려고 선외모터를 작동시킨다. “카네오헤는 훈련하기에 딱 좋은 장소예요. 산호 의 머리 부분이 많고 바람이 계속해서 불기 때 문에 한시도 집중을 늦출 수 없거든요. 방심하 고 있다가 표류된 카누를 주말마다 몇 대씩 봐 요.” 보일락 말락 한 부표를 지나자 선원들은 엔 진을 끄고, 닻을 내리고, 돛을 올린다. “둘! 여 섯! 당겨!” 레이오후 씨와 노엘라니 씨가 핼야 드(닻을 달거나 내릴 때 쓰는 밧줄)를 잡아당기 면서 박자에 맞춰 호흡을 한다. “구호를 들어보 면 저 둘이 마칼라이(Makali‘i)에서 훈련을 받 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보니 선장이 말한 다. 마칼라이는 근대에 세 번째로 만들어진 항 해용 카누다. 한 줄기 돌풍이 만을 휩쓸고, 돛을 바람이 부는 쪽으로 돌리고, 섬유유리로 된 쌍 둥이 카누의 선체를 푸른 바다로 밀어낸다. 칼 라 씨는 나에게 방향타 역할을 하는 커다란 노 를 쥐어주고 운전을 맡겼다. 바람이 차이나맨 의 모자(Chinaman’s Hat)로 알려진 모콜리이 섬(Mokoli‘i islet) 쪽으로 나아가려 하는 우리 를 반대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해변 쪽으로 선체를 돌리자 우리의 오전 항 해가 너무도 빨리 끝이 났다. “호쿨레아는 모든 카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장비를 갖추고 있어 요. 큰 삼각돛, 지삭에 치는 삼각돛 등 최대한으 로 바람을 받기 위함이죠. 우리는 가장 효과적 인 장비들을 사용하지만 동시에 전통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보니 선장이 말한다.


카우아이 섬에서는 근대 와아 카울루아 중에 서 가장 규모가 큰 나마회(Namahoe)가 18년째 건설 중이다. 나를 이 보트가 건설 중인 나윌리 윌리 보트 항구(Näwiliwili Boat Harbor)로 안 내해준 사람은 데니스 천(Dennis Chun) 씨다. 데니스 씨는 카우아이 커뮤니티 칼리지(Kaua‘i Community College)에서 하와이학 학과장을 맡고 있고, 동시에 베테랑 항해사이다. 이 22미 터에 달하는 카누는 카우아이의 자체적인 항해 용 카누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된 프로젝트 로, 데니스 씨와 그의 동료 항해사들 – 존 크 루즈(John Kruse) 씨, 마샬 막(Marshall Mock) 씨, 패트릭 아이우(Patrick Aiu) 씨 – 이 꾸준 히 추진해왔다. “결코 순탄한 프로젝트가 아니 었어요. 지난 몇 년간 첫 작업장이 무너지기도 했고, 미송으로 만든 기둥을 쌓아두었는데 흰 개미들이 갉아먹기도 했고, 뭐 펀딩은 항상 문 제였고요.” 데니스 씨가 말한다. 하지만 붉은 섬 유유리로 된 선체와 당당하게 수직으로 뻗은 밝은 노란색의 선단부품들, 호놀룰루의 아파트 만큼이나 폭이 넓은 기둥을 가진 이 거대한 카 누를 보면 그런 어려움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다. 나마회를 제작하는 이들 역시, 전통 카누를 제작하는 모든 팀이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 바 로 이 카누를 얼마큼 전통적으로 만들어야 하 는가에 대한 고민과 씨름을 해야 했다. 예를 들 어, 실제 선조들의 시대였다면 선체는 코아 나무 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고 려한 끝에 선체에 섬유유리를 사용하기로 했습 니다. 한 가지 이유는 섬유유리가 수리하기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서핑보드는 누구나 쉽게 수리 할 수 있잖아요. 섬유유리로 만든 카누도 같은 방법으로 손쉽게 수리할 수 있어요.” 데니스 씨 는 말한다. 나마회의 사이즈를 고려하면 이 부 분은 특히 중요하다. “이 카누는 모든 면에서 다 른 카누들보다 월등히 큽니다. 그리고 카우아이 의 바다는 굉장히 거칠죠. 이 섬에서 바람이 미 치지 않는 곳은 많지 않아요. 나마회를 크게 만 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나마회 갑판의 그림자 아래 서서 데니스 씨와 존 씨는 과거 바다로 떠났던 모험을 떠올린다. “처음 항해를 시작했을 때, 카누의 앞에 앉아 노를 쥐고 있었는데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어요.” 데니스 씨가 회상한다. “마우 씨 는 뒤에서 그물을 손보고 있었고, 바다 쪽은 내 다보지도 않았죠. 그런데 그가 내 다리를 잡아 당기더니 방향을 재조정하게 했어요. 소리와 느 낌만으로도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 던 거죠. 몇 분 후에 마우 씨가 내 다리를 다 시 잡아당기더니 코코넛 반쪽을 건네며 마시라 고 했어요. 먹으려고 보니 코코넛에 크라운 로열 (Crown Royal: 캐나다 위스키)이 가득 담겨 있 는 거예요. 그는 제게 바다를 ‘볼’ 수 있으려면 20년이 걸린다고 말했어요. 나이가 드니 이제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겠어요.”


나마회는 완공이 되면 마우이의 항해용 카 누 모오키하 오 피일라니(Mo‘okiha o Pi‘ilani) 와 합류하게 될 것이다. 이 카누는 2013년 12 월 21일, 동짓날 바다로 첫발을 내디뎠다. 7년 간의 프로젝트에 마침표를 찍는 이 순간을 그 동안 많은 커뮤니티 회원과 단체들이 기다려왔 다. 첫 항해를 시작하기 2달 전, 마우이의 휘 오 와아 카울루아(Hui o Wa‘a Kaulua)의 자원 봉사자이자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맷 레인 (Matt Lane) 씨가 모오키하가 건설 중인 라하 이나(Lahaina)의 카메하메하 이키 공원(Kamehameha Iki Park)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 일대가 오직 저 카누를 위해 지어졌어요.” 맷 씨 는 말한다. “저는 언제나 선원이 되기를 꿈꿔왔 고,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예요. 비록 지금은 서 류를 정리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저는 만족합니다. 카누의 첫 항해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미친 듯이 바빠지고 있어요.”

레인은 카누 옆에 있는, 전통 돛을 만드는 데 에 쓰이는 식물이 자라고 있는 정원을 보여준다. 배의 밧줄을 만드는 데 쓰이는 이에이에(‘ie‘ie) 와 돛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할라(hala)가 있다. 백산호와 흑돌로 만들어진 ‘천체 나침반’이 해 변을 향하고 있고, 할라우 와아(hälau wa‘a: 카 누 하우스) 앞의 오두막집에서는 서핑보드를 빌 려주고 서핑수업을 제공한다. 그 수익금은 카누 를 만드는 데에 쓰인다. 나무로 만든, 해안 가까 이를 항해할 때 타는 카누 모올렐레(Mo‘olele) 도 있다. 모올렐레는 호쿨레아보다 1년 앞서 바 다를 항해했다. 지난 몇 년간 이 카누는 마우이 의 남쪽 해변을 자주 항해하며 믿음직스러운 배 임을 증명했다.

“저는 수년 전 처음 카누로 항해를 시작했고, 남은 여생을 항해를 하며 보내게 될 거라는 것 을 직감했어요.” 모오키하의 선장 팀 길리옴 씨 는 이렇게 말하며 봉사자들을 안내하고, 일요일 아침부터 할라우 와아에 들른 셀 수 없이 많은 서포터에게 인사를 건넨다.

모오키하의 선원 중 한 명인 팔라니 라이트 씨 역시 길리옴 씨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저 는 라하이나루나(Lahainaluna)의 선생님이 저 를 이곳에 데려왔을 때 모오키하를 처음 봤어 요. 그러고는 완전히 매료되었죠. 이제 저는 29 살이고, 이로써 이 카누와 함께한 지 12년이 되 었네요.” 밀폐제를 바르기 위해 선체로 기어올 라가며 그는 말한다. “저는 2004년에 첫 항해 를 했고, 2005년에는 하와이의 북서쪽 아일랜 드를 항해했어요. 그 다음은 호쿨레아로 미크로 네시아와 일본을 항해했죠.” 그는 회상한다. “혼 자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에요. 카누와 함께 하는 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닙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이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요. 카누는 개인이 아닌 커뮤니티에 속합니다.”

장거리 항해를 위해서는 항해용 배뿐만 아니 라 뛰어난 항해사가 필요하다. 30살의 칼라 베 이바얀(Kala Baybayan) 씨는 모오키하의 일등 항해사가 되기 위해 훈련 중이다. 그녀의 아버 지인 차드 칼레파 베이바얀(Chad Kalepa Baybayan) 씨는 2010년 마오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포(pwo) – 일류 항해사 – 로 인정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아버지로부터 항해의 많은 부 분을 배웠습니다.” 칼라 씨는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단독 항해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 고 있는 학생이랍니다. 평생의 직업이에요.”


폴리네시안 카누를 타고 항해를 한다는 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와아 카울라우 프로젝트에 자 원하거나, 또는 별과 해류의 움직임을 정복하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기회이다. 하지만 보니 선장의 집 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수십 년간 영화촬영과 웨 딩촬영의 배경이 되어온 코알로아 목장이 나온 다. 이곳에서 제임스 폭스(James Foxx) 씨는 새 수송용 배, 모쿠 카하이를 마치 항해용 카누처 럼 만들어서 운행하고 있다. “호쿨레아의 복제 판이에요.” 그는 목장의 방문객들을 모쿠 카하 이에 태워 카네오헤 베이로 이동시키면서 말한 다. 모쿠 카하이의 이중 선체는 호쿨레아의 선 체를 만들 때 사용한 똑같은 틀을 이용해 만들 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 둘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모쿠 카하이는 본질적으로 선외모터에 의해 작 동하는 호수용 보트이다. 그렇지만 모쿠 카하이 에 탑승하는 방문객들은 폴리네시안 항해에 대 해 조금이나마 배워볼 수 있다.

오세아니아 문화에서 카누를 타고 항해한다 는 것은 언제나 단순한 이동수단 그 이상을 의 미했다. 어린 아이들은 카누를 타고 놀며 자란 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기개를 카누를 타고 고기를 잡고, 교역을 하고, 모험을 떠남으로써 시험한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카누의 디자인, 제조, 항해에 대한 지식을 나누어준다. 비록 항 해가 몇 세기 전처럼 다시 성행하기는 어렵겠지 만, 카누는 여전히 태평양 바다로부터 몇 천 마 일 떨어져 퍼져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주 는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이 카누들은 어떻게 보�����면 섬유유리와 목재와 밧줄과 캔버스에 불과 합니다. 하지만 이 카누의 제조에 참여한 사람 들에게는 그 이상의 큰 의미를 지녀요. 우리 모 두는 다시 바다로 나아갈 순간만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